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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 간호사? 보구녀관은 뭘까?

by sunnysam5050 2023.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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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 간호사?

결론부터 말하자면 1908년 보구녀관 간호원양성소를 1회로 졸업한

김마르다님과 이그레이스님입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기독교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죠.

 

좌: 이그레이스 / 우: 김마르다

 

 

김마르다님은 1870년 초 출생으로 추측되는데 노비도 양반도 아니었다고 해요.

남편에게 심하게 폭행 당해 다친 김마르다님을

사람들이 보구녀관으로 데려왔고,

회복된 이후에 감리교 선교회, 정동의 보구녀관, 동대문의 볼드윈 진료소에서

일했다고 해요.

처음에는 간병인과 같은 의료보조인의 역할을 하다가

기독교에 대한 전도 활동, 간호 후배 양성 등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남편에게 당한 폭행으로 인해 오른쪽 손가락이 없었고 

코도 성치 않았다고 해요. 

 

이그레이스님은 1883년 출생으로 사노비였다고 해요.

다리가 불구였던데다 병까지 걸려 내버려졌는데

사람들이 보구녀관으로 데려와 치료를 받게 한 것이

간호사가 된 시발점이었다네요.

김마르다님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잡일과 의료 보조원일을 했다고 해요.

이그레이스님은 학업과 병원 운영, 통역에 뛰어났다고 하고

나중에는 수간호사가 되어 여성과 어린이들을 돌보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또한 공부를 계속해서 1914년에는 준의사 면허증이라고 할 수 있는 

총독부 의생 자격을 취득하기도 했어요. 

 

두 분 모두 인생의 굴곡과 신체적 장애를 극복한 분들이죠. 

 

보구녀관은 뭘까? 

 

이화학당 설립자인 메리 스크랜튼과 그의 아들 윌리엄 스크랜튼,

의사 메타 하워드가 1887년 10월에 설립한

조선 최초의 근대식 여성 전용 병원이에요. 

미국 감리교 여성 해외 선교회가 1887년에 문을 열었죠.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과

이화여자대학교 의료원의 전신이에요. 

'보구녀관'은 '널리 여성을 구하는 곳'이라는 의미로

남녀가 유별해서 남자 의사에게 진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조선 여인들을 위해 세워진 기관이었죠.

 

이 보구녀관애서 1903년 미국 간호사 마가렛 에드먼즈가 

'간호원 양성소'를 개설했고 

그곳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교육을 받은 간호사가 배출되었어요. 

(지금은 '간호사, 간호사 선생님' 등의 명칭을 사용하지만, 

이전에는 '간호부, 간호원' 심지어는 중국식 용어인 '호병인'이라고 불리기도 했어요.)

 

1903년에 세워졌는데 1908년에 두 명의 간호사가 배출되었으니 

짧은 시간에 후다닥 배출된 것은 아니죠.

6명이 입학을 했었고 결국 2명만이 졸업을 했다고 해요. 

 

 

이화의료원은 2020년 '보구녀관'을 복원한 박물관을

서울 강서구 마곡동 이대서울병원 앞뜰에 세웠어요.

복원된 보구녀관 (출처: 이화의료원)

 

 

결론

 

우리나라 최초의 간호사는 

1908년 보구녀관 간호원양성소 출신의 

김마르다님과 이그레이스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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