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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 간호사?

by sunnysam5050 2024.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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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이름만 따온 PA 제도

 

 

오늘은 병원에서 PA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후배 남자 간호사 H 이야기를 해볼게요.

 

PA(Physical Assistant)는 미국에서 온 명칭인데, 명칭만 가져왔고 성격은 전혀 달라요.

미국에서는 PA가 정식 직업군으로, 학사 졸업 후 3년간 의료 경험이 있는 사람이 2년간의 석사 코스를 밟아야 해요. 수술에도 참여하고 회진도 하죠. 의사는 이러한 행위에 대해 Co-sign도 하고요. 모든 것이 법적인 보호를 받죠. 

 

하지만 우리나라 PA 간호사들은 저런 과정이 없이 각 병원별로 양산되죠. 우리나라 PA 간호사는 약 20년 전부터 있었지만, 아직도 그 역할이나 존재가 양지(?)로 나오지 못 하고 있어요. 이제는 PA 간호사가 없는 병원(대학병원부터 개인병원까지)을 찾기가 힘들 정도인데 말이죠. 

 

하는 일도 수술 보조부터, 드레싱 교환, 캐스트 감기와 절단, 케모포트(항암제 넣는 통로) 관리 등 광범위해요. 하지만 PA 간호사는 간호부 소속이 아니라 진료부 소속인 간호사이에요. 그래서 근무 평가도 의사에게서 받고 상사도 의사죠. 병원에 따라 ‘전임 간호사’ 혹은 ‘전담 간호사’라 불러요. 행위에 대한 법적 보호 장치도 미약하죠. 

 

 

현장의 PA 간호사들이 느끼는 현타 

 

 

처음 경력을 병동에서 시작했던 H는 여자 간호사들 틈에서 견디기가 힘들었다고 해요. 그렇다고 남자 간호사들이 많이 선택하는 소방직에는 가고 싶지 않아 PA 직군을 뽑을 때 지원했다네요. PA 간호사의 업무는 간호대학교에서 배웠던 것들과는 달라 경력직이었지만 오리엔테이션을 다시 받고 일을 시작했고요.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이 저렴한 월급을 받으며 의사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점점 깨달았다고 해요. 위계가 강한 의료계이다보니 의사가 시킨 일을 안 하겠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종종 ‘이 일을 왜 내가 하고 있지?’라는 의문이 들었다네요.

 

만약 업무를 거부한다면 의사가 불필요하고 과도한 업무를 지시하면서 괴롭힐 수 있기 때문에 내색을 할 수 없었다고 해요. 병원은 위계질서가 엄청 강한 곳이거든요.

 

게다가 환자들이 “선생님은 의사예요? 아니예요?”라고 물을 때면 곤혹스러웠대요.  몇몇 환자들은 “당신은 의사가 아니잖아?”하면서 은근히 무시를 하기도 했고요. 

 

PA 간호사들의 문제

 

도대체 PA 간호사들의 문제는 무엇일까요?

 

의료법 제2조에서 간호사 업무에 대해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라 규정하고 있으니까 PA 간호사가 자체가 불법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문제는 ‘진료의 보조’라는 개념이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다 보니, 의사가 해야 할 많은 일이 PA 간호사에게 손쉽게 떠넘겨진다는 데 있죠. 

 

PA 간호사가 의사 개인의 아이디와 비번을 이용해서 병원 전산망에 접속해도 될까요?

PA 간호사가 약 처방 및 검사 처방을 내도 될까요?

PA 간호사가 수술 기록이나 수술 동의서 작성을 해도 될까요?

PA 간호사가 간단한 집도를 하고 상처 드레싱 등의 수술 후 처치를 해도 될까요?

PA 간호사가 동맥혈 채취를 하고, 중심정맥관 제거를 해도 될까요?

PA 간호사가 인공호흡기 적용 및 분리를 해도 될까요?

 

우리나라 상황에서 교과서적 대답은 모두 No!이지만 현장에서는 모두 Yes!예요. 

 

PA 간호사가 아닌 일반간호사들도 저 중에서 거의 대부분의 일은 하고 있죠. 만약 선배 간호사가 의사 일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시켰을 때, "정말 그 일을 해야 하나요?"라고 물으면 이런 대답을 들을 거예요. 

 

“하라면 하세요. 여기서는 다 해요.”

 

그런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가장 큰 이유는 의사 수의 부족이죠.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의사수는 2010년에 2.05명, 2020년 2.49명으로 크게 변화가 없어요. 게다가 한국의 의사수는 OECD 국가들과 비교하면 여전히 적죠.

 

또 국내에서는 면허의사수를 많이 사용하지만 국제적으로는 활동의사수를 주로 사용해요. 활동의사란 실제 환자진료 업무에 종사하는 의사를 말해요. 활동의사 기준으로 한국의 인구 1000명당 의사수는 서구 선진국들의 2/3 수준에 불과하답니다. (출처: 보건복지부, 「보건복지통계연보」 각 연도, 통계청, 「2020년 기준 장래인구추계」)

 

이런 의사 인력 부족이 환자 안전을 침해하고 불법 의료 행위를 하게 하고 있어요. 게다가 2017년 시행된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전공의법)’이 시행된 이후 주당 최대 수련 시간이 80시간으로 제한되면서 PA의 불법 행위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죠. 전공의들이 해야 하는 업무까지 PA 간호사들에게 넘어 온 것이죠. (그런데 전공의들이 하지 않는 일들, 전공의들이 없는 시간에 의사들이 해야 하는 일의 많은 부분을 일반 간호사들이 하고 있어요.)

 

그 다음 이유는 인건비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의사들은 고액 연봉자죠.. 반면 간호사들은 간호조무사들의 연봉과 뒤섞여 날이 갈수록 하향평준화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병원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비용 절감에 유리한 선택을 하죠. 의사 일을 하면서도 값싼 간호사 페이를 받는 PA 간호사를 고용하게 되는 것이에요. 

 

 

더 심각한 것은....

 

 PA 간호사가 의사 일을 하다가 의료 사고가 나면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요?

시키는 일을 한 PA 간호사일까요?

자기 일을 떠넘기고 안 한 의사일까요? 

 

PA 간호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시도가 있기는 해요. 

 

우선 의대 정원을 늘리려고 하는 것이죠. 하지만 정부가 실행을 하려고 할 때마다 의사협회를 중심으로 한 의사 집단이 맹렬하게 반대를 하는 것을 우리는 여러 차례 보아왔어요. 2024년 봄, 현재도 진행형이죠. 의사들은 진료 거부, 삭발 투쟁, 단식 투쟁 등 아픈 환자들을 볼모로 잡고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려 하고 있어요.

 

그럼 PA 간호사를 양성화하면 어떨까요? 정식 직책으로 인정하고 합당한 보상을 하며 전문적인 교육을 체계적으로 시키는 식으로 말이죠. 몇 년 전 서울대 병원에서 PA 간호사를 적극 양성하고 관리하겠다고 했어요. 그러자 의료계의 다른 쪽에서는 의료 체계를 무너뜨리고 의료의 질을 저하시키며, 젊은 의사들의 수련 기회를 박탈한다고 강하게 반발해서 결국 또 무산되었죠. 

 

분명히 수십 년 전부처 의사 일을 해왔는데, 그 존재를 인정 받지도 못 하고, 대우도 제대로 못 받는 돌팔이, 날라리 의료진으로 취급받고 있어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사이에 불법과 합법을 오가며 일하는 PA 간호사들의 고된 하루는 계속 이어지고 있어요. 의사가 아니지만 의사 일을 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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